안녕하세요! 피쏘입니다:)
유쾌한 주제 또는 호기심에 대하여 가볍게
알아보는 이번 [TMI Series]의 주제는
'에르메스는 왜 이렇게 비쌀까?'입니다.
명품 중의 명품이라 불리는 에르메스의
핸드백은 보통 몇천만원 가격이며 비싸게는
몇억을 호가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에르메스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비싼 것이며 또 어떻게 해서 명품 중의
명품이 되었는지 가볍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르메스에 대해서 알아보기에 앞서 창립자에
대하여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랑스 태생의 '티에리 에르메스'는 1837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으로 '에르메스'를 창립하였습니다.
처음 생긴 '에르메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에르메스가 아닌 말을 탈 때 사용하는 마구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이 당시에는 '에르메스' 외에도 다른 마구 제작
업체가 많았는데, 어떻게 해서 에르메스는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바로 '장인 정신'에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요인 일수도 있지만 티에리
에르메스는 보통 장인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도자기 장인들과 비슷하게 스스로
판단하기에 완벽한 '마구'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히 폐기하였는데, 이 당시에 가죽을 구하기
매우 어려운 점을 고려한다면 보통의 장인
정신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품질을 바탕으로 1867년, 프랑스에서
열렸던 만국박람회에서 마구 제품으로 1등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후 귀족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에르메스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1880년, 경영권을 물려받은 티에리
에르메스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는
공방 수준을 벗어나 위 사진과 같이 큰
매장을 오픈하게 됩니다.
뛰어난 품질과 입소문으로 만들어진 명성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시기였습니다.
1922년, 샤를 에밀 에르메스의 아들 '에밀
에르메스'가 경영권을 물려받아서 운영을
하는 시기에 에르메스는 혁신을 맞게
됩니다.
에밀 에르메스는 오늘날 '지퍼'로 불리는 시스템의
독점권을 얻어 에르메스 제품에 사용을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구나 안장에 국한되어 있는 에르메스
제품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남성용 의류 또는 골프
재킷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1951년, 에밀 에르메스의 사위 '로베르 뒤마'가
에르메스를 물려 받을 때까지 '스카프' 또는 '타이'등
을 만들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였지만 1956년
에르메스의 역사가 바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 사진의 켈리 백입니다.
미국의 영화 배우이자 모나코 공주였던 '그레이스
켈리'를 위하여 로베르 뒤마가 직접 디자인
하였는데, 이 켈리 백으로 인하여 에르메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에르메스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켈리 백 이후로 '여성복 컬렉션' 또는 '패션 잡지'
등을 시도하면서 더욱 더 성장을 하던 에르메스는
1984년 또 다시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버킨 백'입니다.
1984년, 영국 배우 겸 가수였던 '제인 버킨'은
파리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당시,
에르메스 대표였던 로베르 뒤마의 아들 '장
루이 뒤마'와 나란히 앉게 되었습니다.
비행이 시작되었고 인사를 나누던 도중, 버킨의
핸드백이 엎어지게 되었는데, 이를 본 '장 루이
뒤마'는 가방에 문제가 있는 것을 인지하고
그 자리에서 버킨을 위한 백을 디자인하게
되는데, 이 순간이 바로 요즘 2년을 기다려도
못 산다는 버킨 백의 탄생의 순간입니다.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지금의 에르메스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에르메스는
단순히 '켈리 백' 또는 '버킨 백' 때문에 지금과
같이 비싼 것일까요?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 수공업 입니다.
1세대부터 이어진 장인 정신이 깃든 에르메스는
타 명품 브랜드가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본국에서 조립하여 메이드 인 이태리 또는
메이드 인 프랑스 등을 붙여 판매하는
방식을 따라하는 것이 아닌 전 제품 수공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에르메스 장인들이 직접 손으로 만들었기에 제품이
아닌 작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품질 입니다.
에르메스 학교를 거쳐 수련 과정까지 대략
5년에서 7년 정도 숙달된 에르메스 장인들은
분업없이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보니 에르메스 장인 1인당 1주일에
제품 1개 또는 2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품질이 만족스럽게 나올지 않을
경우, 창립자 티에리 에르메스처럼 불에
태워서 폐기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프로세스로 인하여 에르메스의 명성이
지금의 명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수공업'과 '품질'이 에르메스가 비싼
이유인데, 이 두 요인은 참으로 지키기 쉬워보이지만
여러 유혹 등으로 인하여 지키기 어려운 요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에르메스가 비싼 진정한
이유는 '고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대한 가볍게 설명드리고 싶었지만 에르메스의
브랜드 가치를 보여드리고자 전체적으로
설명드렸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주제들로 찾아뵐 수 있는
피쏘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피쏘 드림 -
-----------------------------------------------
사진 출처 : 에르메스 공식 홈페이지
(https://www.hermes.com/kr/ko/)
lofficielbaltics, the new york times,
posterlounge, collector square, elle,
wall street journal, 문화뉴스, wikiwand
내용 참고 : 에르메스 공식 홈페이지, brunch, 문화뉴스,
여기다이슈
안녕하세요! 피쏘입니다:)
유쾌한 주제 또는 호기심에 대하여 가볍게
알아보는 이번 [TMI Series]의 주제는
'에르메스는 왜 이렇게 비쌀까?'입니다.
명품 중의 명품이라 불리는 에르메스의
핸드백은 보통 몇천만원 가격이며 비싸게는
몇억을 호가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에르메스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비싼 것이며 또 어떻게 해서 명품 중의
명품이 되었는지 가볍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르메스에 대해서 알아보기에 앞서 창립자에
대하여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랑스 태생의 '티에리 에르메스'는 1837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으로 '에르메스'를 창립하였습니다.
처음 생긴 '에르메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에르메스가 아닌 말을 탈 때 사용하는 마구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이 당시에는 '에르메스' 외에도 다른 마구 제작
업체가 많았는데, 어떻게 해서 에르메스는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바로 '장인 정신'에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요인 일수도 있지만 티에리
에르메스는 보통 장인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도자기 장인들과 비슷하게 스스로
판단하기에 완벽한 '마구'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히 폐기하였는데, 이 당시에 가죽을 구하기
매우 어려운 점을 고려한다면 보통의 장인
정신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품질을 바탕으로 1867년, 프랑스에서
열렸던 만국박람회에서 마구 제품으로 1등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후 귀족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에르메스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1880년, 경영권을 물려받은 티에리
에르메스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는
공방 수준을 벗어나 위 사진과 같이 큰
매장을 오픈하게 됩니다.
뛰어난 품질과 입소문으로 만들어진 명성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시기였습니다.
1922년, 샤를 에밀 에르메스의 아들 '에밀
에르메스'가 경영권을 물려받아서 운영을
하는 시기에 에르메스는 혁신을 맞게
됩니다.
에밀 에르메스는 오늘날 '지퍼'로 불리는 시스템의
독점권을 얻어 에르메스 제품에 사용을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구나 안장에 국한되어 있는 에르메스
제품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남성용 의류 또는 골프
재킷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1951년, 에밀 에르메스의 사위 '로베르 뒤마'가
에르메스를 물려 받을 때까지 '스카프' 또는 '타이'등
을 만들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였지만 1956년
에르메스의 역사가 바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 사진의 켈리 백입니다.
미국의 영화 배우이자 모나코 공주였던 '그레이스
켈리'를 위하여 로베르 뒤마가 직접 디자인
하였는데, 이 켈리 백으로 인하여 에르메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에르메스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켈리 백 이후로 '여성복 컬렉션' 또는 '패션 잡지'
등을 시도하면서 더욱 더 성장을 하던 에르메스는
1984년 또 다시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버킨 백'입니다.
1984년, 영국 배우 겸 가수였던 '제인 버킨'은
파리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당시,
에르메스 대표였던 로베르 뒤마의 아들 '장
루이 뒤마'와 나란히 앉게 되었습니다.
비행이 시작되었고 인사를 나누던 도중, 버킨의
핸드백이 엎어지게 되었는데, 이를 본 '장 루이
뒤마'는 가방에 문제가 있는 것을 인지하고
그 자리에서 버킨을 위한 백을 디자인하게
되는데, 이 순간이 바로 요즘 2년을 기다려도
못 산다는 버킨 백의 탄생의 순간입니다.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지금의 에르메스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에르메스는
단순히 '켈리 백' 또는 '버킨 백' 때문에 지금과
같이 비싼 것일까요?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 수공업 입니다.
1세대부터 이어진 장인 정신이 깃든 에르메스는
타 명품 브랜드가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본국에서 조립하여 메이드 인 이태리 또는
메이드 인 프랑스 등을 붙여 판매하는
방식을 따라하는 것이 아닌 전 제품 수공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에르메스 장인들이 직접 손으로 만들었기에 제품이
아닌 작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품질 입니다.
에르메스 학교를 거쳐 수련 과정까지 대략
5년에서 7년 정도 숙달된 에르메스 장인들은
분업없이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보니 에르메스 장인 1인당 1주일에
제품 1개 또는 2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품질이 만족스럽게 나올지 않을
경우, 창립자 티에리 에르메스처럼 불에
태워서 폐기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프로세스로 인하여 에르메스의 명성이
지금의 명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수공업'과 '품질'이 에르메스가 비싼
이유인데, 이 두 요인은 참으로 지키기 쉬워보이지만
여러 유혹 등으로 인하여 지키기 어려운 요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에르메스가 비싼 진정한
이유는 '고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대한 가볍게 설명드리고 싶었지만 에르메스의
브랜드 가치를 보여드리고자 전체적으로
설명드렸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주제들로 찾아뵐 수 있는
피쏘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피쏘 드림 -
-----------------------------------------------
사진 출처 : 에르메스 공식 홈페이지
(https://www.hermes.com/kr/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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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참고 : 에르메스 공식 홈페이지, brunch, 문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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